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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출신 코리아 전도사 세계 누빈다

Posted October. 07, 2005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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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러시아에서 태어났지만 국적은 대한민국이고 지금은 노르웨이에서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베스트셀러 당신들의 대한민국의 저자로 유명한 박노자(블라디미르 티호노프32) 오슬로국립대 교수는 6일 기자가 전화를 걸자 이렇게 자기소개를 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 이문화()연구소의 레오니트 페트로프(36) 교수의 이력도 박 교수 못잖게 글로벌하다. 박 교수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대 한국학과 동문인 그는 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에서 북한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적은 오스트레일리아, 사는 곳은 미국이지만 매일같이 한반도 연구와 강의를 한다.

이처럼 세계 곳곳에서 한국을 업으로 삼아 활동하는 러시아 출신의 한국 전문가들은 수십 명이다. 미국에는 하와이 아시아태평양안보연구센터(APCSS)에 알렉산드르 만수로프(45) 교수가 있고, 워싱턴 브루킹스연구소에는 알렉산드르 보론초프(47) 박사가 방문연구원으로 있다. 캐나다에는 한국어 퉁구스어 등 11개 국어를 구사하는 언어학자 빅토르 아크닌(53) 교수가 있다. 안드레이 란코프(42) 국민대 초빙교수도 1996년부터 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 한국학과에 재직 중이다.

란코프 교수는 러시아에서 가장 뛰어난 한국학 연구자들 중 영어로 강의와 토론이 가능한 30, 40대 대부분이 러시아 밖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박노자 교수는 아예 한국 여성과 결혼하면서 한국 국적을 택했다.

러시아의 한국 전문가들이 외국행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옛 소련 붕괴 후 교수와 연구원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처우가 급락했기 때문이다. 때마침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북한 핵 사태 등으로 한반도 전문가에 대한 수요는 전 세계적으로 늘어났다.

박 교수는 요즘에는 해마다 미국에 5, 6개, 유럽에 1, 2개씩 한국 관련 일자리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 자리를 러시아 출신이 채우는 경우가 많다는 것. 이들의 경쟁력 때문이다.

러시아의 한국학 수준과 전통은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제정 러시아 시절인 1897년 이미 상트페테르부르크대에 한국어 강좌가 개설됐다. 소련 시절에는 북한과의 밀접한 관계 때문에 조선학(한국학)을 공부할 여건이 좋았다. 시장논리와 상관없이 모든 학문을 골고루 육성한 사회주의 체제 덕분에 서방에서는 한국학이 별 볼일 없던 시절에도 꾸준히 발전할 수 있었다.

러시아의 한국학이 가장 강한 분야는 어문학과 한국사 한국철학 등 인문분야. 그중에서도 고전 연구가 발달했다. 소련 시절 정치색 없는 분야를 선호했던 탓이다. 란코프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주제는 조선시대 당쟁() 연구고 박 교수의 전공은 가야사다.

러시아 출신 한국 전문가들은 학문적 배경뿐 아니라 현장 실무 경험도 풍부하다. 보론초프 박사나 만수로프 교수는 평양 주재 외교관으로 일한 경력이 있다.

란코프 교수는 우리도 한국학의 세계화에 조금은 기여를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의 외국행은 러시아로서는 심각한 두뇌 유출이다. 란코프 교수도 유능한 동료 후배들이 외국으로 나가거나 학문의 길을 포기하고 기업 등으로 가는 바람에 러시아 내의 한국학이 위축될지 모른다며 걱정했다. 그러나 박 교수는 국적과 국가에 얽매이기 싫다고 말했다.



김기현 kimki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