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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자의 승복 ‘GG 매너’-‘셔틀’‘스캔’, 게임 중 쓰는 말

패자의 승복 ‘GG 매너’-‘셔틀’‘스캔’, 게임 중 쓰는 말

Posted March. 31, 2018 07:31,   

Updated March. 31, 2018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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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9년 8월 스키 꿈나무였던 캐나다 고등학생이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스타크래프트(이하 스타) 대회에 초청된 ‘특별 게스트’였다. 단박에 준우승하면서 상금 1500만 원을 거머쥐었다. 그는 이미 미국과 유럽 등 해외 대회에서 상금으로만 6000만 원을 번 정상급 게이머. 대학 입학을 위해 고국으로 잠시 귀국했지만 게임, 아니 한국을 잊을 수 없었다. 세계 대회에서 우승해도 주변에서 “컴퓨터 게임 1등 해서 뭐 할래”라며 놀리던 캐나다와 한국은 뭔가 달랐다. 결국 ‘e스포츠’ 사업과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만든 한국의 스타 열풍은 17세 소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9일 서울 강남구 블리자드 사무실에서 ‘1세대 스타게이머’ 기욤 패트리(36)를 만났다. 한국에 온 지 19년째인 그는 한국말을 편하게 했다. 2004년 프로게이머를 은퇴한 뒤 현재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스타에 대한 애정은 그대로였다. 현역 시절 생긴 늦잠 습관으로 인터뷰에 지각했지만 게임 얘기를 시작하자 10대로 돌아간 것처럼 푸른 눈을 반짝였다. 

○ e스포츠, 프로게이머 태동 알린 성지

 블리자드가 1998년 3월 발매한 스타는 테란, 저그, 프로토스 등 3개 종족이 우주 전쟁을 벌이는 콘셉트로 전 세계에 파장을 몰고 왔다. 자원(미네랄, 가스)을 채취해 유닛과 건물 등 전쟁 물자를 준비하고, 공격과 방어 전략을 세우는 과정이 재미를 더했다. 2000년 같은 회사에서 출시한 ‘워크래프트’에 밀려 해외에서 고전하고 있었지만 유독 한국에서만큼은 인기를 더했다. 다른 나라 대회는 통상 3위까지 상금을 줬지만 한국에서는 8위를 해도 해외 대회 3위보다 더 많은 상금을 줬다. 스타 게이머들에게 한국은 ‘성지’였다.

 “2000년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다시 한국에 왔지만 프로게이머로서의 수명은 길어봤자 1, 2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픽과 사양이 좋은 신작이 계속 쏟아지는데 2년 이상 인기가 지속된 게임이 그때까지는 없었거든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스타 성지’ 한국에는 PC방과 게임 중계라는 변수가 있었다.

 “고향(캐나다)에서 PC방에 가려면 차를 타고 10분 넘게 걸렸는데 한국은 조금만 걸어도 PC방 천지였어요. 남학생 전유물이던 캐나다 PC방과 달리 여자와 아저씨(회사원) 손님이 많은 것도 신기했죠.”

 스타는 한국에 PC방 신드롬을 일으켰다. 게임 아이디만 있으면 세계 누구와도 겨룰 수 있는 ‘배틀넷’(전용 인터넷)과 최대 8명이 삼삼오오 ‘동맹’을 맺고 동시에 접속할 수 있는 ‘팀플레이’ 포맷이 인기의 원동력이었다. 함께 놀기 좋아하는 한국인에게 PC방은 방과 후 놀이터이자 2차 회식 장소가 됐다. 1998년 전국 100여 곳에 불과했던 PC방은 2년 뒤인 2000년 1만5000여 개로 폭증했다.

  ‘하는 재미’ 못지않게 ‘보는 재미’도 컸다. 국내에서는 1999년 세계 최초 스타 중계방송을 시작으로 2000년 게임전문 케이블 채널(온게임넷)까지 생겼다. 정상급 선수들의 기상천외한 전략과 상대 움직임을 간파해 순식간에 뒤집는 광경에 관중은 열광했다. 매스컴은 선수들을 우상으로 만들었다. 학교에서 발표도 못 할 정도로 수줍음 많던 외국인 학생도 금세 유명 인사가 됐다.

 “한국에 온 지 두세 달 만에 대회 우승을 했어요. 패밀리레스토랑에 갔는데 40대 아저씨가 자기 아내, 아이를 데리고 사인을 받아 가는 걸 보고 인기를 실감했죠. 가게에 가면 먼저 알아보고 대신 계산해 주거나 공짜 서비스를 주는 일도 많았어요.”

 패트리는 기동성 있는 셔틀(프로토스의 병력 수송선)에 리버(느리지만 대량 살상 능력을 갖춘 지상용 공격 유닛)를 태운 뒤 상대방 진영에 떨어뜨려 기습하거나(일명 ‘슈팅리버’) 자원을 캐는 일꾼을 많이 뽑아 기지 확장(멀티) 전 일일이 컨트롤하는 플레이 등을 처음 선보였다. 한국 선수들보다 손놀림은 느렸지만 멀티 타이밍을 잘 잡고 끊임없이 병력(물량)을 뽑아내 장기전에 유리했다. 스타에 전략과 전술 개념을 확장한 게이머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프로게이머가 뜨자 일각에선 ‘놀고먹는’ 편한 직업이란 부정적인 인식도 나왔다. 정말 그랬을까. 패트리는 지금은 프로게이머들이 억대 연봉을 받으며 승승장구하지만 초창기 게이머들의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고 말했다.

 “스타가 1000만 장 넘게 팔렸지만 프로게이머로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은 20명도 안 됐어요. 처음엔 스폰서나 매니저 찾기도 힘들었죠. 상금을 못 받거나 떼인 선수들은 오직 열정으로 견뎠어요.”

 대회 상금이나 중계방송 출연료를 매니저가 가로채는 배달 사고가 빈번하자 방송국에서는 아예 입금은 선수 본인 계좌로만 하도록 규정을 바꿨다. 선수들의 입지가 바뀐 건 2004년 스타리그 결승전에 10만 관중이 몰리고 나서부터다. 게임의 인기와 가능성을 목도한 대기업들이 앞다퉈 프로게임단을 창단하고, 정부도 e스포츠 지원을 확대했다. 세계 최초로 창단한 공군 e스포츠 팀은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 “청소년기 성장과 삶을 이끌어준 등불”

 “요즘 스마트폰 게임은 쉬워지고 심지어 자동으로 하던데 그게 게임인지 잘 모르겠어요.”

 패트리는 스타의 매력으로 사람마다 천차만별인 ‘전략’과 노력이 천재를 이기는 ‘열정’을 꼽았다. 그는 “스타에서 제일 마음에 든 건 저와 옆사람에게 똑같이 리버 두 마리씩을 줘도 보여줄 수 있는 게 하늘과 땅 차이라는 점”이라며 “보기는 쉬워도 따라 하기는 어려운 게 스타의 묘미”라고 말했다. 치열한 고민과 연습 없이 영원한 승자도 없다는 얘기였다.

 “저도 처음엔 연습 조금만 하고 쉽게 우승하는 ‘천재’를 동경했지만 언제부턴가 지독한 연습벌레인 한국 선수의 기량이 일취월장하는 게 멋져 보였어요. 저도 합숙하면서 관리를 받았으면 더 오래 선수 생활을 했을 텐데….”

 기발한 플레이로 승승장구하던 패트리는 자신만큼 창의적인 전략으로 약체 테란을 강자 반열에 올린 신예 임요환 선수(별명 ‘테란의 황제’)에게 패하며 데뷔 4년 만에 은퇴를 결심한다.

 15년 전 동료들과 누볐던 스타 전장에선 이제 인공지능(AI)과의 대결이 시작됐다. 지난해 세종대에서 인간과 AI의 첫 번째 대회가 열렸고, ‘알파고’를 만든 구글의 자회사 딥마인드도 게임시스템 분석에 집중하고 있다.

 패트리는 인간의 승리를 쉽게 장담하지 못했다. 그는 “스타는 생각하고 컨트롤할 게 너무 많은 게임이라 지금 당장은 이영호 선수(현재 1위)를 이길 AI가 없을 것”이라면서도 “컴퓨팅 능력이 배가되면 키보드나 마우스를 안 쓰는 AI가 더 유리해지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식상하지만 마지막 질문은 바꾸지 않았다. ‘패트리에게 스타란?’

 “20년이 지났지만 스타를 했던 기억은 어제처럼 생생해요. 스타에 대한 추억과 함께 자란 거죠. 저에게는 삶과 길을 이끌어준 ‘등불’이었는데 여러분에게는 어떠신가요?”


신동진 shi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