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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 여제’ 린지본 마지막 올림픽 동메달

‘스키 여제’ 린지본 마지막 올림픽 동메달

Posted February. 22, 2018 07:49,   

Updated February. 22, 2018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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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교 시절 린지 킬다우라는 이름을 가진 무명 선수로 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지 16년이 지난 뒤 린지 본(34·미국)이라는 슈퍼스타는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 활강 레이스에 힘차게 뛰어들었다. 8년을 기다린 간절함, 얼마 전 세상을 떠났지만 하늘에서 손녀를 지켜볼 할아버지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는 다짐과 함께. 결승선을 통과한 그에게 기록은 큰 의미가 없어 보였다. 후회 없이 모든 것을 쏟아부은 그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만이 번졌다.

 스키여제 본이 21일 정선 알파인경기장에서 열린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 활강 무대를 동메달로 마무리했다. 7번째로 레이스에 나선 본은 1위 소피아 고자(26·이탈리아)보다 0.56초 늦은 1분39초69를 기록했다. 은메달은 고자에게 0.09초 뒤진 랑힐 모빈켈(노르웨이)에게 돌아갔다.

 올림픽 데뷔전인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에서 6위에 오르며 깜짝 스타로 떠올랐을 때만 해도 본은 미처 몰랐을 것이다. 평창 포디엄에 서기까지의 여정이 이렇게 고될 줄은.

 올림픽과 본의 관계는 ‘악연 그 이상’이었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서 본은 개회식도 열리기 전에 트레이닝 중 크게 넘어져 헬리콥터에 실려 갔다. 등에 멍이 든 채 4종목에 나섰지만 최고 성적은 7위였다. 그래도 본은 아픈 만큼 교훈도 컸던 시절로 회상한다. “스키에서는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모든 게 끝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니 늘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매 경기 스스로를 한계로 밀어붙였다.”

 본의 전성기는 2007년 토머스 본과 결혼하며 ‘린지 본’이라는 이름을 얻은 뒤 비로소 시작됐다. 여자 최다승 기록도, 2010 밴쿠버 올림픽 미국 여자 선수 최초 활강 올림픽 금메달도 이때 나왔다.

 하지만 2013년 이혼하면서 스스로 “커리어에서 가장 어두웠던 순간”이라 말하는 시련이 시작됐다. 2014 소치 올림픽 직전 무릎 인대가 끊어져 올림픽 출전이 물거품이 됐고 크고 작은 부상에 신음했다.

 2016년 11월 훈련 도중 오른쪽 팔뚝이 골절됐을 때 평창 출전이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3개월 만에 복귀하는 투혼을 보였다. 감각이 덜 돌아온 오른손에 테이프로 폴을 감고 뛴 평창 올림픽 테스트이벤트에서 본은 슈퍼대회전, 활강 모두 2위에 올랐다.

 외국인으로 유일하게 홍보대사를 맡을 만큼 본에게 평창은 특별했다. 월드컵 최다승(86승·잉에마르 스텐마르크) 기록 도전도 중요했지만 본은 올 시즌 몸이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바로 대회 출전을 포기했다. 오로지 평창 올림픽에 다 걸었다.

 올림픽을 불과 100여 일 앞두고 눈을 감아 함께할 수 없었지만 본은 할아버지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레이스를 준비했다. 젊은 시절 6·25전쟁에 참전했던 할아버지는 세상을 뜨기 전까지 손녀의 마지막 올림픽을 보러 갈 계획 짜기에 여념이 없었다.

 경기 후 본은 “소피아가 타는 걸 뒤에서 보고 이기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실수 없이 완주해 후회는 없다. 늘 그렇듯 가장 빨리 달리려고 애썼고 경쟁을 즐겼다. 마지막 올림픽 활강 레이스에서 포디엄에 설 수 있어 자랑스럽다”며 웃었다.

 본은 마지막 올림픽 무대에 응원을 온 가족들에게도 남다른 고마움을 전했다. “마지막 올림픽을 가족, 그중에서도 아버지와 함께할 수 있어 특별하다. 밴쿠버 때 못 오셨었는데 오늘 동메달 따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 다행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얼마나 짧은지 새삼 깨달았다. 가족들과 많은 추억을 쌓고 싶었다. 우리 가족 모두의 레이싱이었다. 그간 나를 위해 가족 모두가 많은 희생을 했다. 나도 오늘 좋은 언니, 좋은 이모이고 싶었다.”

 자신의 주 종목인 활강을 마친 본은 22일 복합 출전을 끝으로 잊을 수 없는 공간이 된 평창과 작별한다.


임보미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