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봅슬레이 주역들

Posted November. 22, 2017 08:09,   

Updated November. 22, 2017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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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년의 기다림.’

 그동안 한국 봅슬레이가 걸어온 길을 되짚기만 해도 한 편의 동화가 써진다. 주인공은 이용 총감독과 원윤종(파일럿), 서영우(브레이크맨). 썰매 불모지인 한국 땅에서 아시아 최초로 월드컵 금메달의 기적을 이룬 주역들. 현재 월드컵 시즌(11월 9일∼2018년 1월 22일)을 치르며 평창 겨울올림픽에서의 아름다운 결말을 위해 힘쓰고 있다.

 국내에선 이들의 이 대회 1, 2차 성적(각각 10위, 13위)이 기대에 못 미치자 각종 우려가 터져 나온다. 이 위기를 극복할 저력이 그들에게 남아 있을까. 지난달 21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출국 준비를 하던 그 주인공들에게 전해들은 ‘위기 극복의 과거사’를 통해 점쳐 봤다.

○ 이용 총감독의 비기(秘記)

 이 감독의 오른손 검지에 굳은살이 박여 있다. 경기장에서 타국 팀 코치의 지시 사항을 몰래 듣고 힘줘 쓰다 보니 생긴 흔적이다. 조언 구할 사람 한 명 없던 7년 전 신임 감독 시절부터 이 감독은 그렇게 비기(비밀기록)를 써 내려갔다. 그만한 사정이 있었다.

 “(썰매가) 전복되자 주변에서 ‘왜 여기 와서 방해하고 있나’라고 수군대는 타국 선수들의 불평이 들렸죠. 그때 저랑 선수들은 고개도 못 들고 트랙을 빠져나왔습니다.”

 2010년 겨울 처음 감독직을 맡아 나간 아메리칸컵에서 당시 초보 선수들은 수차례 전복 사고를 당했다. 다친 선수들을 보는 것도 미안하고, 또 앞날을 헤아리는 것도 막막했다.

“경험이 없으니 주행법도, 스타팅법도 맨바닥에 헤딩하듯 연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코스 분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름길을 모르니 더디게 성장할 수밖에 없었죠.”

 그렇게 다른 팀 노하우를 엿들으며 받아 적은 노트만 이젠 30개가 넘어간다. “첫 번째 코스에선 오른쪽으로 바짝 붙여라” “자세를 더 낮게 잡고 달려라” 등등. 국제 대회 때마다 이 감독은 선수 대기실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경기장에서 다른 팀 코치들이 무전기로 주고받는 소리에도 귀 기울였다. 한국 봅슬레이의 기반을 다지는 참고서는 그렇게 탄생했다.

 2014년 1월 미국 레이크플래시에서 열린 아메리칸컵 7차 대회였다. 4년 전 타국 팀의 멸시와 조롱을 받았던 바로 그 대회였다. 이 감독의 간곡한 요청으로 처음으로 빌린 썰매가 아닌 대표팀 전용 새 썰매를 타고 레이스를 펼쳤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아시아 최초로 이 대회 2인승(원윤종-서영우)에서 금메달을 딴 것이다. 이후 2015∼2016시즌 월드컵 랭킹 1위 도약까지, 많은 것이 달라졌다.

 “여러 번 성장통을 겪었습니다. 이젠 무엇이든 두렵지 않아요. 남은 건 하나입니다. 이번 대회(월드컵)는 그날을 위한 ‘쉼표’일 뿐입니다. 본 무대는 내년 평창이니까요.”

○ 원윤종-서영우의 트라우마

 “이런 얘기 하면 (원)윤종이 형이 마음이 안 좋을 텐데….”

 겁 없이 시작한 봅슬레이는 만만치 않았다. 2010년 겨울 미국 전지훈련 때였다. 서영우가 당시 파일럿인 원윤종과 짝을 이뤄 처음 썰매를 타기 시작할 무렵이다. 당시 그가 탄 썰매는 매번 뒤집어지기 일쑤였다. 몸에 난 상처가 하나둘 늘어날수록 두려움이 커졌다.

 “뒤집어지면 어깨가 바닥에 끌려 타는 듯이 아파요. 게다가 저(브레이크맨)는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앞을 못 보잖아요. 어느 순간 뒤집어져서 썰매가 미끄러져 가는데…. 그러다가 정신을 잃어 응급실에 실려 간 적도 있습니다.”

 썰매 주행을 온전히 책임지는 파일럿 원윤종의 어깨는 천근만근이었다. 서영우와 마찬가지로 대학 때까지 육상을 하며 운동신경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던 그였다. “열 번 주행하면 7, 8번 전복됐어요. 동료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죠. ‘이렇게 못 하는 종목이 있었나’ 하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죠.”

 둘은 심리적으로 완전히 무너져 내리던 그때, 오히려 독기를 품고 물러서지 않았다. 원윤종은 타국 선수의 경기 영상을 하나하나 살피며 각 대회장 구간별 특성을 파악했다. 그 와중에 새삼 ‘세계의 벽’이 높아 보이기까지 했다. “(그들의 경기를 보고 나니) 비교도 안 될 만큼, 싸워 보지도 못할 만큼 차이나 보였죠. 하지만 훗날을 바라보고 매년 할 수 있는 일들을 해 왔습니다.”

 서영우는 올림픽 출전의 그날만 생각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빌려 탄 썰매로 고전할 때도, 멍든 상처에 홀로 연고를 바를 때도 머릿속으로 평창에서 질주하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때로 너무 버거울 때면 이 감독을 찾아가 조언을 구하며 ‘여기서 무너질 수 없다’는 오기를 길렀다. 그렇게 둘은 7년여의 세월을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한국 썰매의 새 역사를 써 왔다.

 둘은 25일 캐나다 휘슬러에서 열리는 월드컵 3차 대회를 앞두고 있다. 1년 전 고(故) 맬컴 로이드 코치의 부인이 건네준 메달을 받고 사상 첫 금메달을 목에 건 곳이다. 그때 받은 메달에는 원윤종 서영우가 꿈꾸는 동화의 마지막이 적혀 있다.

 “평창 금메달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라.”



김재형 mona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