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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 회장의 역발상 승부

Posted April. 02, 2018 07:45,   

Updated April. 02, 2018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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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은 경영이 중대한 상황을 맞을 때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승부수를 던져 위기를 타개해 왔다. 1998년 안팎의 반대를 무릅쓰고 법정관리 중인 기아차를 인수해 글로벌 메이저로 도약할 발판을 마련하고, 그 이듬해 미국에서 상식을 뛰어넘는 ‘10년, 10만 마일 보증제도’를 도입해 현대차의 품질에 대한 인식을 일거에 바꿔놓은 것 등이 대표적인 예다.

 현대차그룹이 지난달 28일 내놓은 지배구조 개편안에서도 ‘승부사 정몽구’의 면모가 드러난다.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내겠다는 내용은 시장이 예상했던 바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순환출자가 재벌그룹 총수 일가의 지배권을 유지하고 승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그룹은 현대차그룹 하나뿐”이라며 콕 찍어 압박을 해오던 터이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깜짝 놀란 것은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예상해온 지주회사 체제 대신 사업지배회사 체제를 선택한 점이다.

 정 회장이 양도세를 1조 원 이상 절약할 수 있는 지주회사 카드를 버린 결정적인 이유는 두 가지로 보인다. 첫째, 지주회사는 금융계열사를 거느릴 수 없다는 규제 때문에 현대캐피탈을 매각해야 하는데, 현대캐피탈은 현대·기아차의 판매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할부금융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둘째, 현대모비스가 지주회사로 바뀌면 자회사인 현대차와 손자회사인 기아차는 투자와 인수합병에 심각한 제약을 받게 된다. 이렇게 되면 M&A를 통해 격렬한 지각변동이 이뤄지고 있는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현대·기아차의 설 자리가 없어진다.

 지주회사는 지배구조의 유일한 정답도 아니고, 경영 성과를 담보하는 제도는 더더욱 아니다. 지난해 10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롯데그룹은 롯데카드 등 8개 금융계열사 처분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 롯데카드를 처분하면 유통사업에 적지 않은 타격이 올 수밖에 없다. 일본에는 중간금융지주회사 제도가 있어서 소니 같은 제조업체들이 은행과 보험사 등 금융계열사를 ‘지주회사 우산 아래’ 거느리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지주회사 제도는 이런 유연성이 없다. 기업의 경쟁력을 중시하는 관점에서 볼 때 정 회장이 지주회사 체제를 피한 것은 불가피하면서도 바람직한 선택이다.

 현대·기아차의 이번 지배구조 개편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정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부회장이 지배구조의 정점인 현대모비스의 대주주로 처음 이름을 올렸다는 점이다. 이로써 정 부회장은 그룹 내에서 활동공간이 크게 넓어졌다. 지금까지 정 부회장의 조심스러운 행보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지만, 시장에서는 “승계 준비가 가장 안 된 그룹”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생산해왔다. 정 부회장의 역할 확대는 시장의 걱정을 덜어주는 동시에 사업적인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요즘 현대차와 기아차의 품질에 대해서는 “벤츠나 렉서스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승차감에 비해 하차감(차에서 내릴 때 주위에서 던지는 부러운 시선에 대한 느낌)이 떨어진다”는 것이 아직은 대체적인 평가다. 승용차를 살 때 브랜드 평판과 디자인 등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경향은 젊은 층일수록 강하다. 품질에 대한 정 회장의 집념에 정 부회장의 젊은 감각이 더해져야만, 승차감보다 하차감을 중시하는 소비자 시류(時流)에 현대·기아차가 올라 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