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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던 길 마저 가자

Posted February. 20, 2018 07:40,   

Updated February. 20, 2018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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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림피안에게 올림픽은 “내 시곗바늘이 도는 이유”(쇼트트랙 심석희·21·한국체대)다. 올림픽만 바라보고 몸과 마음을 단련해온 선수들은 평창의 빙판과 눈밭에서 질주하고 날아다니며 반전과 감동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역사를 쓰고 있다. 승리의 환호와 패배의 탄식 사이 명언도 쏟아진다. 명승부와 함께 오랫동안 기억될 평창 어록이다.

 온갖 부상으로 수술대에 일곱 차례 올랐던 임효준(22·한국체대)에겐 첫 올림픽을 위해 특별한 주문이 필요했다. 그가 인스타그램에 올려둔 주문은 “ne doubt ye nought(의심하지 말라)”. 정강이뼈와 손목에 이어 허리까지 부러졌지만 죽도록 연습해 ‘의심’을 없애고 개막식 다음 날인 10일 쇼트트랙 남자 1500m에서 올림픽 신기록을 세웠다.

 쇼트트랙 에이스 최민정(20)은 13일 여자 500m 결승선을 2위로 통과하고도 실격당했다. 펑펑 울던 ‘얼음공주’는 “남은 경기에선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가던 길 마저 가자.” 그는 17일 1500m 경기를 압도했고 시상대의 가장 높은 곳에 섰다. 스켈레톤 황제 마르틴스 두쿠르스(34·라트비아)의 8년 장기집권을 끝장낸 윤성빈(24·강원도청)의 16일 우승 소감은 평창 겨울올림픽 이후를 위한 또 다른 주문이다. “한국 스켈레톤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고 싶다.”

 황제와 여제들이 줄줄이 신예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런데 스노보드 노장 숀 화이트(32·미국)는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남자 결선에서 아찔한 점프를 뽐낸 띠동갑 히라노 아유무(20·일본)를 더욱 아찔한 필살기로 누르고 세 번째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일곱 살 때부터 후원사가 붙었던 타고난 스노보더는 지난해 10월 점프하다 추락해 얼굴을 62바늘이나 꿰맸다. 가족은 “더 이상 실력을 입증할 필요도 없고, 돈도 많이 벌었다”며 평창행을 말렸지만 그는 이를 갈았다. “거울을 볼 때마다 흉터를 보았고, 그 상처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그는 흉터를 새겨준 그 회전기술로 2014 소치 올림픽 노메달의 수모를 딛고 평창에서 전설이 됐다.

 쿼드러플 점프를 6번이나 뛰는 점프 괴물 네이선 천(19·미국)을 멀리 따돌리고 우승한 피겨 왕자 하뉴 유즈루(24·일본)도 “다친 발목이 고맙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점프 착지 중 넘어져 오른쪽 발목 인대를 다친 그는 이번 대회에서 불필요한 기술을 자제하고 연기의 완성도에 집중한 결과 66년 만의 남자 싱글 2연패라는 기적을 썼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의 전형이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면 금메달을 딸 수 없었을 것이다.”

 모든 올림피안의 목표가 메달은 아니다. 소치 금메달 2개를 포함해 쇼트트랙에서 메달 5개를 따낸 박승희(26)는 평창에서는 종목을 바꿨다. 마지막 올림픽 무대로 ‘쇼트트랙의 정상이 아닌 스피드스케이팅의 밑바닥’을 택한 것이다. 그는 “무모한 도전을 응원해줘 고맙다”며 ‘N포세대’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20대여! On Fire!”

 22일 46세 생일을 맞는 독일의 클라우디아 페히슈타인은 이번이 일곱 번째 올림픽이다. 그는 역대 올림픽에서 금 5개를 포함해 모두 9개의 메달을 모았다. 평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0m에 함께 출전한 선수 17명 가운데 9명은 그가 1992 알베르빌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을 때 태어나지도 않았다. ‘이제 쉴 때도 되지 않았느냐’는 질문이 평창에서도 나왔다. “나보다 어린 선수들을 꺾었다. 내 또래 중 누구도 나보다 빠르지 않다.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또 메달을 딸 기회가 생길지도. 2022 베이징 올림픽에 나가느냐고? 못 할 것도 없지!”


남시욱 @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