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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Posted 2017-11-28 08:44,   

Updated 2017-11-28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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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도 사람이다. 낙태죄를 폐지하라.” “내 자궁은 나의 것이다.” 지난달 15일 서울 도심에서 ‘강남역 10번 출구’ 등 페미니스트 단체 등이 주최한 집회에서 등장한 구호들이다. 참가자들은 검은 옷을 입고 행진하면서 임신과 임신중단, 출산 같은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는 여성에게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집회의 계기는 앞서 보건복지부가 입법 예고한 ‘의료관계 행정처분규칙’ 개정안이었다. 개정안에 의하면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된 임신중절수술을 한 의사의 경우 최대 12개월까지 자격 정지를 하는 등 처벌이 강화된다. 집회의 주최 측은 낙태를 영아살해로 몰아가는 사회적 분위기에 분노했다, 인구억제 정책을 위해 몇십년동안 불법 낙태시술을 방조해온 정부가 저출산이 사회문제로 부각되자 ‘낙태’를 쟁점화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35개 회원국 중 29개국은 임산부의 요청이나 사회·경제적 사유가 있을 경우 낙태죄를 허용한다. 우리는 강간 등 극히 예외적 사유가 인정될 때만 중절을 허용한다. 하지만 연간 16만9000건(2010년 기준)으로 추정되는 낙태 건수 중 합법 시술은 6%에 그치고 있다.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 청원’ 이 23만 건을 넘어서자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국가와 남성의 책임은 완전히 빠져 있다”며 사실상 개정 필요성을 밝혔다.

 ▷사형제는 헌법과 법률에 명시돼 있지만 1997년 이후 한 건도 집행이 이뤄지지 않았다. 폐지론으로 기울었다가도 반인륜적 범죄가 벌어질 때면 응보형(탈리오의 법칙)으로서의 사형집행 논의가 다시 불붙는다. 낙태죄 역시 시대변화를 반영해야 한다는 폐지론도 비등하지만 존치론 역시 만만치 않다. 지난해 미국 대선 당시 공화당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낙태를 반대하는 연방대법원 판사를 임명하겠다”는 공약까지 했다. 여성의 선택보다 태아의 생명존중이 앞서야 한다는 것이다. 반드시 낙태 이슈 때문은 아니겠으나 대선 이후 조사에서 백인 개신교 신자 81%는 트럼프를 지지한 것으로 나왔다. 미국에서 낙태는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중요한 쟁점이지만 한국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