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나보다 먼저”… 밀양 참사 현장서 빛난 시민정신

“나보다 먼저”… 밀양 참사 현장서 빛난 시민정신

Posted January. 29, 2018 08:32,   

Updated January. 29, 2018 08:53

ENGLISH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에서 최초로 불이 붙은 1층 응급실에는 마지막까지 당직 의사가 남아 있었다. 의사는 소화기를 분사하며 숨질 때까지 불을 꺼보려다가 화마(火魔)를 피하지 못했다. 다른 병원에 근무하며 아르바이트로 선 당직이었지만 환자를 두고 빠져나오지 않았다. 5층 치매노인 병동은 자칫 더 큰 ‘참변’을 부를 뻔했지만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다. 요양관리사가 노인들에게 수건을 나눠줘 입을 막게 한 뒤 차례로 대피시켜 기적을 만들었다. 그는 연기를 많이 마셔 구조 직후 입원했다. 38명이 숨지고 151명이 다친 참사였지만 환자의 생명을 먼저 살핀 의료진의 살신성인(殺身成仁)이 그나마 인명피해를 줄였다.

 위기의 순간 십시일반으로 구조 활동을 벌인 밀양 시민들의 활약도 빛을 발했다. 병원 주위는 독한 냄새와 매캐한 연기로 자욱했다. 하지만 창문으로 “도와 달라”고 손을 흔드는 환자를 목격한 시민들은 가던 길을 멈췄다. 이들은 소방대원을 도와 소방슬라이드를 붙잡고, 내려오는 환자들을 안전한 장소로 대피시켰다. 영하 10도의 강추위에 얇은 환자복만 입은 환자들에게 자신의 외투를 벗어 입혀주기도 했다. 인근 주민들은 이불과 핫팩을 들고 나왔다. 화재 소식에 부리나케 달려온 보호자들도 구조 현장에 뛰어들었다. 한 사람의 손길이라도 더 필요한 때 시민들은 먼저 달려가 구조에 힘을 보탰다.

 빈소를 꾸릴 공간이 20여 곳에 불과한 소도시에 발생한 대형 참사로 밀양은 도시 전체가 슬픔에 잠겼다.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 한 달 여 만에 발생한 참사를 지켜보는 국민들도 비통해 하고 있다. 이번에도 열려 있던 방화문, 접근이 어려운 비상구 등 대형 화재 때마다 지적됐던 부실한 안전관리의 판박이라 무력감마저 든다. 이런 와중에 자신의 자리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한 의료진과 이웃을 내 가족처럼 돌본 시민들이 한 줄기 빛으로 느껴진다. 이들의 숭고한 시민정신이야말로 사회의 든든한 바탕이다. 고통과 위기 속에 발휘된 튼튼한 공동체의식이 ‘안전한 대한민국’으로 가는 길을 여는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