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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 혈액형 할머니, 한미일 공조로 살렸다

희귀 혈액형 할머니, 한미일 공조로 살렸다

Posted 2017-11-29 08:50,   

Updated 2017-11-29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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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 혈액형 할머니, 한미일 공조로 살렸다

 16일 오후 5시 일본 간사이공항에서 김포공항으로 출발한 항공기 화물칸. 드라이아이스로 채워진 하얀 스티로폼 상자에 선홍색 냉동 혈액 5유닛(1유닛은 400mL)이 들어있다. 매우 희귀한 혈액형인 ‘바디바바디바(-D-/-D-)’ 혈액이었다. 다음 날 오전 냉동 혈액을 녹일 때 반드시 필요한 해동액이 경기 평택 미군기지에서 서울 세브란스병원으로 출발했다. 해동액을 갖고 있는 곳은 국내에서 미군 평택병원뿐이다.

 한국과 일본, 미국의 삼각 공조로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희귀 혈액형 환자인 김동금 할머니(72·여)의 심장이 극적으로 다시 뛰게 됐다. 일본 적십자사의 혈액 제공과 미군의 해동액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희귀 혈액형 환자가 해외에서 공수한 혈액으로 수혈을 받은 건 2004년에 이어 두 번째다.

 이달 2일 병원에 입원한 김 할머니는 세균 덩어리가 심장에 염증을 일으키는 ‘감염성 심내막염’ 진단을 받았다. 심장 판막 손상으로 피가 역류해 수술이 시급했다. 하지만 의료진은 뜻밖의 난관에 부딪쳤다. 김 할머니의 혈액형이 희귀 혈액형 중에서도 가장 드물다는 바디바바디바였다.

 수술하려면 이 희귀 혈액을 구해야만 했다. 병원의 요청을 받은 대한적십자사는 헌혈자 데이터베이스(DB)에서 같은 혈액형을 보유한 4명을 찾아냈다. 하지만 정밀 검사 결과 4명 모두 수혈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이 나왔다. 결국 대한적십자사는 일본 적십자사에 SOS를 보냈다. 한국과 달리 일본은 오래전부터 국가 차원에서 희귀 혈액을 냉동 보관하고 있다. 천만다행으로 일본에 바디바바디바 냉동 혈액 재고가 있었다.

‘혈액 공수 작전’은 이때부터 급물살을 탔다. 대한적십자사는 특송 업체에 혈액 운반을 의뢰했다. 이 업체 직원은 공항 세관에서 밤을 새우며 냉동 혈액이 녹지 않도록 틈틈이 드라이아이스를 채워 넣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어렵게 공수한 냉동 혈액을 녹일 해동액이 필요했다. 국내에선 혈액을 해동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해동액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이때 병원 혈액원장인 김현옥 교수의 경험이 빛을 발했다. 그는 2004년 희귀 혈액형 환자 수혈 당시에도 혈액을 해동한 국내 최고의 혈액 전문가다.

 김 교수는 미군 평택병원에 전시 물자로 비축해둔 해동액을 제공해 달라고 요청했다. 미군 측은 흔쾌히 해동액을 내주었다. 김 교수는 “혈액 해동은 13년 만이라 주말에 미리 해동 연습까지 했다”며 “귀한 혈액을 구해준 대한적십자사와 다른 의료진의 공이 더 컸다”고 말했다.

 마지막 난관은 혈액 5유닛을 쓰고 나면 더 이상 수혈할 혈액이 없다는 점. 수술을 집도한 심혈관외과 이승현 교수는 절개 부위를 최소화해 수혈량을 최대한 줄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 덕분에 수술 당시 36분간 멈춰 있던 김 할머니의 심장은 혈액 5유닛 중 3유닛만 수혈 받고도 다시 뛰었다. 퇴원을 앞둔 김 할머니는 “희귀한 피를 구해준 의사 선생님들과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헌혈해준 분께 꼭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호경 kimh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