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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실리콘밸리서 벌어지는 ‘新스파이 전쟁’

美실리콘밸리서 벌어지는 ‘新스파이 전쟁’

Posted August. 04, 2018 07:22,   

Updated August. 04, 2018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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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은 미국 실리콘밸리 등에 수조 달러를 투입해 첨단기술을 빼돌려 미국이 차지한 이 분야 왕좌를 노리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이 한층 격화되던 6월 19일. 미국의 대표적인 대중 강경파로 대중 무역전쟁을 이끌고 있는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 겸 국가무역위원회(ITC) 위원장이 폭스뉴스에서 7분 넘게 했던 발언의 핵심이다. 

 같은 날 백악관은 ‘중국의 경제적 침략’을 비판하는 35쪽짜리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중국 국가안전부가 배치한 4만 명 이상의 산업 스파이가 세계를 염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미국을 겨냥한 중국과 러시아의 첩보 활동은 냉전시대 스파이 전쟁을 방불케 한다. 과거에는 이데올로기를 둘러싸고 각축전을 벌였다면 ‘신(新)스파이 전쟁’은 첨단 산업 정보기술을 몰래 훔치는 것으로 임무의 초점을 바꿨다. 자연히 스파이들의 활동 지역도 세계 정치의 중심 워싱턴에서 세계 정보기술(IT) 허브로 통하는 실리콘밸리로 이동하고 있다. 

○ 스파이의 새 거점, 실리콘밸리

 냉전이 시작된 후 60여 년 동안 구소련 등 스파이들의 주요 무대는 미국 동부였다. 정부 기관과 각국 대사관이 밀집된 워싱턴이나 유엔본부가 있는 뉴욕 등이다. 이제는 미국 서부 도시인 샌프란시스코 일대 실리콘밸리에서 활동하는 중국, 러시아 스파이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미국의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미 연방수사국(FBI)이 수사 또는 내사하는 산업 스파이 사건의 20%가 이 지역에서 발생했다. 

 실리콘밸리에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페이스북 구글 등 글로벌 IT 기업의 본사가 밀집해 있다. 전 세계에서 창업이 가장 활발히 이뤄지는 곳이기도 하다. 스타트업 특유의 개방적이고 실험적인 문화와 더불어 전 세계에서 모여든 인재들로 코스모폴리탄(범세계주의) 분위기가 넘쳐난다. 한 전직 미 정보기관 요원은 “보안 시스템을 두지 않고 직위에 상관없이 곳곳을 누빌 수 있게 하는 스타트업 문화가 스파이의 침투를 부르고 있다”고 말했다. 

 서부로 무대를 옮기면서 활동 양상도 달라졌다. 워싱턴이나 뉴욕에서 스파이들은 주로 외교 군사 기밀과 정가 소식을 염탐했지만 실리콘밸리에서는 통상(通商) 기밀이나 첨단기술 정보를 ‘먹잇감’으로 삼는다. 

 과거 전형적인 정보요원들은 대사관이나 영사관에 기반을 두고 신분을 위장해 활동했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의 스파이들은 ‘전업 스파이’가 아니라 유학생이나 연구원, 방문교수 등 합법적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본국의 연구소나 국영기업으로 산업기술을 빼돌리는 방식으로 스파이 활동을 한다. 미국 비자를 가지고 있는 데다 첩보 활동이 일상생활에서 은밀히 이뤄져 사실상 눈에도 잘 안 띈다. 

 미 정부와 거래를 하는 실리콘밸리의 한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 보안 담당 책임자는 “똑똑하고 양심적인 중국계 직원이 중국 정부와 엮여 있는 상황을 본 적 있다. 지금은 특정 프로젝트에 한해서는 미국 시민권자인 직원만 참여시킨다”고 말했다. 

○ 중러 “테크 기업을 사냥하라”

 냉전 시대 미국과 함께 첩보전의 양대 강자였던 러시아는 스파이 활동의 거점으로 벤처캐피털이나 투자회사를 활용하고 있다. 스타트업을 좌지우지하는 자금줄을 쥐고 민간과 군사 분야 모두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을 노리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FBI에 체포된 러시아의 ‘미녀 스파이’ 마리야 부티나(29)가 러시아의 억만장자 콘스탄틴 니콜라예프에게 금전적 후원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니콜라예프는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등 미 IT 기업에 투자하고 있는 인물이다. 

 러시아는 정부 소유 벤처캐피털의 현지 법인인 ‘루사노 USA’를 산업 스파이의 근거지로 활용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한 전직 미 정보기관 관료는 폴리티코에 “루사노 USA는 표면적으로는 벤처캐피털 회사로 활동하면서 은밀하게 정보 수집을 벌이고 러시아에 협조적인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이 회사를 실리콘밸리에서 인맥을 확장하는데 활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고전적 수법인 ‘미인계’로 테크 기업이나 벤처캐피털 회사의 임원을 공략하기도 한다. 실리콘밸리나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자리 잡은 초특급 호텔의 바가 주요 활동 무대로 꼽힌다. 러시아나 동유럽 출신의 고급 매춘부가 기업 임원들과 농밀한 대화를 나누는데 동원된다. 전직 미 정보요원은 “스파이들이 더 이상 직접 기업 내부로 침투할 필요 없이 기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내부 인사를 포섭하면 된다”고 말했다. 

 중국도 실리콘밸리를 대미 첩보 활동의 전략 거점으로 삼고 있다. 실리콘밸리가 있는 캘리포니아주에 중국 국가안전부 산하 전담조직까지 두었다는 말도 있다. 

 중국은 스파이전에서도 특유의 ‘인해전술’ 전략을 편다. 실리콘밸리에서 활동하는 중국 출신 기업인, 엔지니어, 유학생, 여행객 등을 두루 포섭해 정보 획득의 창구로 삼는다. 

 실제 중국 유학생과 화교가 산업 스파이로 활동하다 검거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지난달 7일 전직 애플 엔지니어 장샤오랑이 휴대전화 업체 애플의 영업기밀을 몰래 빼낸 혐의로 출국 직전 FBI에 체포됐다. 장 씨는 25쪽에 이르는 애플의 자율주행차 회로기판 청사진을 자신의 노트북에 다운로드한 뒤 중국 자동차업체로 이직하려다 덜미를 잡혔다. 

 중국이 정보 수집을 위해 동원하는 자금도 막대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2015∼2017년 미국에서 창업 초기 단계의 테크 기업에 투자한 벤처캐피털의 16%가 중국 자본이었다. 자금 조달을 받기 위해 핵심 기술도 노출하는 미국 스타트업이야말로 중국 자본에 최적의 사냥감이 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 투자은행 엔플루언스의 파트너인 브루어 스톤은 FT에 “몇 년 전 중국 투자자들로부터 한 달에 서너 통씩 애플 협력사에 투자하고 싶다는 전화를 받았다. 지나고 보니 투자 의도가 의심스러웠다”고 털어놨다.

○ 첩보전도 미중 양강으로 재편

 세계 질서가 미중 주요 2개국(G2) 체제로 재편되면서 스파이 전쟁 구도도 과거 냉전 시절 미-러 대결에서 미중 대결로 옮겨가는 분위기다. 중국은 정보기관 역량이 미국과 러시아에 비해 떨어지지만 정부 차원에서 바짝 공을 들이고 있다. 철강, 콩 등을 둘러싼 미중 무역전쟁 와중에 백악관이 중국의 산업 스파이 활동을 낱낱이 기록한 보고서를 발표한 것이 중국의 정보전에 대한 미국의 위기감을 보여준다. 

 미 국가정보국 산하 국가정보보안센터가 7월 26일 내놓은 ‘2018년 사이버 공간에서의 외국 산업 스파이 실태’ 보고서도 단연 중국을 가장 위협적인 스파이 국가로 꼽았다. 보고서는 “중국은 벤처 합작, 공동연구, 인재 모집, 기업 인수 등 여러 루트를 총동원해 미국으로부터 정보를 빼내왔다”고 밝혔다. 

 중국의 공세적인 정보전에 위기감을 느낀 미국 또한 첩보 예산을 크게 늘리고 있다. 미 하원은 연방정부 산하 17개 정보기관에 2018년과 2019년 회계연도 2년간 총 1700억 달러(약 190조4000억 원) 이상을 투입하도록 했다. 

 4차 산업혁명이 이끄는 ‘기술 전쟁’의 시대, 실리콘밸리의 세계적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 지역에서 중국의 첩보전과 미국의 방첩전도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전직 미 정보기관 요원은 “나방이 빛 주위로 모이는 것처럼 각국 스파이들은 실리콘밸리로 모여들 것이다. 실리콘밸리가 앞으로 미중 간 최강자를 가리는 전쟁의 한 단면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홍수영 ga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