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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정준영’들, 안전하게 사랑할 권리

수많은 ‘정준영’들, 안전하게 사랑할 권리

Posted March. 16, 2019 07:47,   

Updated March. 16, 2019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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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준영 동영상 스캔들이 터지자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는 이렇게 논평했다. “사회 곳곳에 여성과의 성관계 경험을 과시하는 수많은 ‘정준영’들이 존재한다. 그가 공인이 아니었다면 이 사건은 주목받지 못한 채 지나갔을 것이다.” 연간 불법 촬영 범죄 증가율은 두 자릿수다. 가해자는 대부분 남성인데 5명 중 1명은 연인이나 친구 같은 알고 지내던 사람이다(경찰청 자료). 그래서 정준영 기사엔 이런 댓글들이 달린다. “우리 오빤 아니겠지?” “몰카 무서워서 못하겠네.”

 사실 몰카가 아니어도 선진국의 남녀 간 잠자리 횟수는 줄어들고 있다. 특히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가 그렇다. 진 트웬기 미국 샌디에이고주립대 교수(심리학)에 따르면 1990년대 미국 성인은 월 5.2회 성관계를 했지만 2014년엔 4.5회로 줄었다. 밀레니얼 세대 중 15%는 성인이 되기 전까지 성경험이 없었는데 이는 X세대(1970∼80년생)의 2.5배다. 영국은 16∼44세 남녀의 성관계 횟수가 2001년 월 6회에서 2012년 5회로, 같은 시기 호주는 월 7.2회에서 5.6회로 줄었다. ‘초식남’의 나라 일본은 18∼34세 미혼 남녀 가운데 성경험이 없는 비율이 2005년 33%에서 2015년 43%로 늘었다. 유럽에서 출산율이 가장 높은 스웨덴도 성관계 빈도가 줄어 출산율에 영향을 줄까 걱정하고 있다.

 미국 시사잡지 애틀랜틱은 이러한 추세를 ‘섹스 불황’으로 규정하고 젊은이들이 잠자리를 피하는 원인을 분석했다(2018년 12월호). 우선 학업과 취업 부담 때문에 깊게 사귈 여유가 없다. 젠더 감수성이 발달하면서 여자들은 데이트가 성폭력으로 이어질까 두려워하고, 남자는 오해받을까 봐 머뭇거린다. 소셜미디어의 비현실적인 비주얼에 스스로 주눅이 든 젊은이들도 있다. 데이팅 앱 덕분에 선택의 폭은 넓어졌지만 오히려 딱 한 사람을 고르기는 더 힘들어졌다. ‘선택의 역설’이다.

 경제 불황과 달리 섹스 불황은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여성이 원치 않을 때 ‘노’라고 얘기할 수 있고, 남성은 이를 배려하게 됐기 때문이니 빈도가 줄어든 건 섹스 불황이 아니라 건강한 ‘섹스 다이어트’라는 것이다. 댄 칼슨 미국 유타대 교수(가족소비자학)는 “성관계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은 빈도가 아니라 평등한 성역할”이라고 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가부장적인 커플이 자주 하지만 만족도는 평등한 부부 쪽이 높았다.

 한국 밀레니얼 세대의 성생활에 관한 믿을 만한 통계는 없지만 미국이나 일본의 젊은이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배우 이솜과 안재홍이 주연한 영화 ‘소공녀’(2017년)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가난한 젊은 남녀가 한겨울 난방이 안 되는 자취방에서 사랑을 나누려다 너무 추워서 다시 주섬주섬 옷을 입는다. “봄에 하자”면서.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저서 ‘섹스의 진화’에서 인간의 성적 습성은 다른 동물들과 공통점을 찾기 힘든, 인간만이 가진 특징이라고 했다. 남이 안 보는 데서 사랑을 나누고, 생식이 아닌 쾌락을 위해 관계하며, 하룻밤 사랑이 아니라 한 파트너와 오래 만나는 종은 인간 말고는 없다. 원만한 성생활이 행복감을 준다는 연구는 너무나 많다. 그런 걸 취업이 걱정돼 못하고, 추워서 못하고, 봄이 와도 몰카가 무서워 못한다면 그건 개인 사정이 아니라 사회 문제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는 페미니즘의 슬로건이다. “몇 번 하느냐”, “하면 좋으냐”는 질문조차도 “안전하게 사랑할 권리를 보장하라”는 정치적인 질문이다.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