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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도 주목하는 한국의 공시 열풍

Posted February. 09, 2019 08:45,   

Updated February. 09, 2019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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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일 정오 서울 동작구 노량진의 한 고시촌. 전남 목포가 고향인 경찰공무원(순경) 준비생 윤모 씨(30)는 점심도 거른 채 ‘열공’ 중이었다. 설 연휴에도 고향을 찾지 않고 노량진 고시원과 학원을 오가며 공부만 했다는 그는 “공시생들은 설 연휴를 싫어한다. 식당들이 문을 닫아 며칠 동안 오로지 편의점 도시락만 먹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년째 ‘공무원시험(공시)’을 준비하고 있는 신민정 씨(29·여)도 고향 경북 경주에 가지 않았다. 4월 6일 9급 공무원 필기시험을 앞둔 그는 연휴 내내 밤 11시까지 공부했다. 신 씨는 “대기업 입사는 바늘구멍이고 설사 합격해도 오래 다니기도 어렵다”며 “몇 년이 더 걸릴지 모르겠지만 붙을 때까지 공무원시험을 보겠다”고 밝혔다.

 이날 노량진 컵밥 거리에는 가게마다 줄을 서서 컵밥을 먹는 공시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4월에는 9급 공무원 외에도 경찰공무원시험(27일)도 치러지기에 두 달이 남은 지금은 1분 1초가 아까운 시기. 노량진 지언독서실 직원 김모 씨는 “집이 수도권인 학생들도 연휴에 집에 가지 않고 1일 이용권을 끊어 독서실에 왔다”며 “설 당일인 5일 이용 인원은 평소보다 2배 이상 많았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4월 건국대 박사과정 김향덕 씨와 KAIST 박사과정 이대중 씨의 논문 ‘공무원시험준비생 규모 추정 및 실태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공시생 규모는 약 49만 명. 한창 나이의 젊은이들이 오로지 공무원에만 목을 매는 현상을 해외 언론도 주목하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6일(현지 시간) 3면 머리기사로 “미 최고 명문 하버드대 입학보다 한국 공무원시험 합격 경쟁이 더 치열하다”며 “한국 경제성장이 느려지고 수출 주도 산업에서 중국과 경쟁이 심화하면서 젊은이들이 경기침체의 여파를 받지 않는 공공직에 몰린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4953명을 최종 선발한 한 공무원 시험에는 지원자 20만 명이 모여 합격률 2.4%를 기록했다. 지난해 하버드대학 지원자 합격률(4.95%)의 절반 수준.

 LA타임스는 기업과 중소기업 간 일자리 격차가 큰 것도 공무원 시험 열풍을 부추기는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삼성, LG 등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근무 여건 등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대기업 입사 경쟁도 치열하다”며 “인턴 경험, 높은 학점, 외국어 능력 등 대기업에 인상을 남길 만한 이력서가 없는 젊은이들이 공무원 시험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가 1년 전부터 취업난 해소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한국 청년 다수는 민간 직업의 전망이 금방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1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역시 한국을 ‘과잉교육사회’라고 진단했다. 명문대 입학을 위해 수능을 공부하고, 공무원 대기업 등 화이트칼라 직업을 얻기 위해 입사시험을 치르고, 입사 뒤에도 승진 시험을 치르는 등 ‘공부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신기욱 스탠포드대 사회학과 교수는 SCMP에 “한국의 과잉 공부문화로 인해 청년들이 실제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할 시간이 부족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2017년 미국 공영라디오방송인 PRI는 “20∼30대 한국 청년 중 약 3분의 2가 대학 졸업장 소지자”라며 “그러나 대학을 졸업했다고 해서 삼성과 같은 꿈의 직장에 입사한다는 보장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싶다는 욕구는 한국 젊은이들이 공무원 시험을 치게 한다”며 “경제가 좋지 않아도 정부는 계속 공무원을 채용하고, 한번 공무원이 되면 정년까지 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재희기자 jetti@donga.com · 위은지기자 wiz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