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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퀴니입니다

Posted November. 08, 2018 07:44,   

Updated November. 08, 2018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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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색 유니폼을 입은 흑인 여성이 청소용품이 가득 달린 이동식 쓰레기통을 잡고 서 있다. 관공서, 회사, 백화점 등 대형 빌딩 화장실에서 종종 마주치게 되는 청소노동자다. 비대한 여성의 몸은 그녀가 하루 종일 끌고 다녀야 할 쓰레기통의 무게만큼이나 무거워 보인다.

 진짜 사람 같은 이 조각은 20세기 미국 극사실주의를 대표하는 두에인 핸슨의 작품이다. 그는 실제 사람을 본뜬 인체 조각에 체모를 한 올 한 올 심고 의상을 입힌 다음 특정 장소에 설치해 명성을 얻었다. 정맥과 피부의 작은 타박상 자국까지도 정교하게 표현한 그의 조각들은 실물과 너무 똑같아서 감상자들을 종종 당혹스럽게 만든다. 초기작들은 폭력이나 사고 현장, 또는 베트남전쟁 등 사회정치적 이슈를 담은 작품이 많았지만 1960년대 말부터는 평범한 중·하류층 사람들을 주제로 다뤘다. 벼룩시장 상인, 미장공, 여종업원, 건설노동자 등 그의 작품 속 주인공은 대부분 ‘을’의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이다. 각각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무표정하고 일상에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핸슨은 ‘절망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초상을 통해 아메리칸 드림과 현실 사이의 불일치를 보여준다.

  ‘퀴니(Queenie)’는 이 여성의 이름이다. 가슴에 단 명찰에 그렇게 적혀 있다. 퀴니라는 이름은 여왕을 부르는 애칭으로 빅토리아 시대 대영제국에서 유행했던 여아 이름이기도 하다. 지금은 고된 청소노동자의 삶을 살고 있지만 분명 퀴니는 축복받으며 태어난 누군가의 귀한 딸이었을 것이다. 딸이 여왕처럼 존귀한 사람이 되길 바라며 그녀의 부모가 지어준 이름이거나 어쩌면 퀴니 자신이 붙인 이름일 수도 있다.

 세상에 귀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함부로 해도 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가슴에 단 금색 명찰을 통해 그녀는 ‘내 이름은 청소부가 아니라 퀴니입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핸슨의 작품이 공감을 얻는 건 그의 조각들이 바로 우리 사회의 극사실적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