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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한글 영웅들

Posted 2017-10-13 07:36,   

Updated 2017-10-13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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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날인 9일 오후 2시, 프랑스 파리 외곽 지역에 마련된 교실 1층에 ‘경축, 파리 한글의 집 개원식’이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걸렸다. 1974년 파리 한글학교가 문을 연 지 43년 만에 처음으로 남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쓸 수 있는 교실 4개가 생긴 날이다.

 파리 한글학교 교사 매입 추진위원회 이철종 명예회장(85)은 1999년 위원회를 설립하고 모금에 착수했다. 38만 유로(약 5억 원)를 모아 첫 교실을 갖기까지 꼬박 18년이 걸렸다. 이 회장의 표현대로라면 교민 1400여 명의 정성이 담긴 피눈물 같은 돈이다. 한글학교 꼬마 학생들은 한글 웅변대회나 글짓기대회에서 받은 수상금을 기부금으로 냈다.

 개원식 때 귀빈석에 앉지 않겠다고 버티던 이 회장은 막상 사회자의 권유로 무대에 서자 목소리가 떨렸다.

 “그동안 프랑스에서 제일 높다는 몽블랑 샤모니도 가고 남부 높은 산에도 올랐습니다. 그런데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이 넓은 땅에 우리 2세들 한글 가르칠 곳이 없다는 생각에 아무런 기쁨이 없었습니다. 이제 공부할 공간이 생겼습니다. 감개무량합니다.”

 이 회장은 국민학교 3학년 학생이던 1943년을 잊지 못한다. 2학기가 시작되자 일본 교사가 학교에서 한국말을 쓰지 못하게 했다. 한국어를 쓰다가 걸려 손들고 서 있거나 무릎을 꿇고 벌 서는 날이 계속됐다. 우리나라에서 우리말을 쓸 수 없었던 그 시절 기억은 한으로 남았다.

 그의 최종 학력은 국민학교 졸업이다. 광복 직후 아버지가 급사하면서 4형제를 책임지느라 더 이상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요리사 자격증을 딴 뒤 1976년 파리로 건너와 한식당 요리사로 일하다 한식당 주인이 됐다.

 한글학교 학생의 60%는 프랑스인과 한국인 부부가 낳은 다문화 아이들이다. 이들은 한글학교가 없으면 프랑스에서 한글을 접할 기회가 없다. 개교 이후 43년 동안 수많은 한글 영웅은 교민 2세들에게 한글을 전파하겠다는 일념으로 학생을 가르치고, 기부금을 모으고,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 회장과 함께 모금에 앞장섰던 최윤규 한글학교 재단 이사장은 키 작은 낡은 의자들을 가리키며 “돈이 없어 프랑스 학교에서 얻어온 의자들이다. 부끄러운 현실이지만 그런 의자를 놓을 수 있는 우리 터전이 생긴 것만으로도 너무 감격스럽다”며 눈물을 왈칵 쏟았다.

 그동안 한글학교는 수요일엔 오전 수업만 하는 프랑스 학교를 설득해 수요일 오후 교실을 빌려 운영해왔다. ‘셋방살이’ 신세는 늘 서럽기 마련이다. 이사 횟수만 열 번이 넘는다. 학교 물건이 부서지면 모두 한글학교 학생 소행이라고 몰아붙이는 프랑스 학교 때문에 보험까지 들어야 했다.

 그런 그들의 노력은 서서히 빛을 발하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12개 학년, 학생 수는 250명으로 늘었다. 지난해부터는 한국어가 프랑스 대학 입시인 바칼로레아 시험에서 제2외국어 선택 필수과목으로 지정돼 한국어를 배우려는 프랑스 학생들도 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자신들의 치적인 양 홍보하고 있지만 자기가 다니는 프랑스 학교에 ‘한국어 수업’을 늘려 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건 한글학교 학생들이고 이들을 가르치는 건 한글학교 교사 출신들이다.

 이날 국가 대신 한글 전파에 앞장서는 이들의 개원식에 교육원장 한 명 외에 어떤 고위 공무원들도 보이지 않았다. 한글학교 재단이 대사관에 초대장을 보냈지만 한글날이 공휴일이기 때문에 못 간다고 했단다. 공휴일로 지정했을 때 누구도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었다. 하긴 얘기를 들어보니 모금에 참여한 1400명 중 정치인이나 공무원은 장관 딱 한 명이었다고 한다.